한미장애인협회
Who We Are
한미장애인협회는 1993년에 미국 정부 산하의 비영리 단체로 정식 등록한 발달 및 지적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위한 모임으로 현재 다운증후군, 자폐, 뇌성마비 등의 장애인과 가족들이 등록되어 있는 단체입니다. 여러 행사들을 통해 서로의 어려운 형편을 나누고 위로하며 필요한 정보들을 교환할 뿐 아니라 장애인 자녀들이 사회 적응을 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In 1993, we were officially registered as a non-profit organization with the U.S. Government for individuals with developmental or intellectual disabilities and their families. Our current members consist of people with Down syndrome, Autism, Cerebral palsy, etc. and their family members. Through various events, we not only share and comfort each other’s circumstances and exchange necessary information, but also help promote their learning and social adjustments.
우리의 이야기
Our Stories
승우 Seungwoo
저희 부부는 승우 하나만 키우고 있으며, 미국에 온 지 8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좀 익숙해져서 여러모로 삶이 안정이 되었지만, 처음 이민을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선 땅에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동분서주하며 정신없이 지냈던 것같습니다. 오래간만에 과거를 회상해보니 많은 영상들이 머리 속을 순식간에 가득 채웁니다.
암울한 한국의 장애인 환경에 무작정 이민 보따리를 쌌던 2008 년 봄, 승우를 공립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상담과 진단을 받고, 그 와중에 승우가 자전거를 타다가 팔이 부러져서 부랴부랴 보험도 없이 병원에 가서 수술도 받고, 특수교육을 받기 위해 했었던 수많은 IEP 미팅들, 7년동안 네 번 학교를 옮겨야 해서 그때마다 가졌던 많은 Transition 미팅들, 십대에 접어들며 더욱 심해진 경기 (seizure) 때문에 911 을 자주 부르다가 결국 헬기까지 탔었던 순간, 맞벌이를 하다보니 휴교나 방학, 아파서 등 승우가 학교에 못가는 날에 아이를 맡길 곳을 찾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순간들, 힘든날이 하염없이 지속되는것 같으면 ‘계속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는 한숨섞인 절규를 삼키며 지내왔던 생활들…
하지만, 우리보다도 더 힘들었을 승우가 , 한줄기 햇살처럼 항상 해맑게 웃으며 잘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어, 저희 부부는 그 긴 어두운 터널같은 삶에서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힘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이를 저희 부부가 잘 키울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신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때로 저희 부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서 난감해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놀랍도록 순조롭게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을 보며, 승우는 역시 하나님께서 키우시는 아이라는 것을 확신하곤 합니다. 지금 저희 부부는 하루하루 일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2016 년. 승우 엄마 이 경아
사랑 Sahrah
1988년 10월 12일,
임신 24주 밖에 되지않은, 아직은 엄마 뱃속에서 더 자라야 할 아기가 그만 세상 밖으로 나오는 사고가 났다.
1파운드 6 온스…
일찍도 너무 일찍 엄마 뱃속에서 나와버린 아기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물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기본 - 혼자서 숨쉬는 것 조차도..
모든 것을 의학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너무도 작은 어린 생명은 이 모질고 험한 세상에서 왜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채, 매일 매일 수많은 기계와 주사기를 주렁주렁 온몸에 매단채, 고통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차라리 그냥...
편하게 영원히 자지 ~ 눈뜨고 봐줄 수 없어 수없이 맘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산소 부작용으로 망막에 이상이 생겼고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조산아 망막전문 안과 의사를 소개받아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까지 당시 3파운드인 애기를 데리고 수술을 받으러 다녔다.
갈 때는 비행기를 탈 수있지만 수술이 끝난 뒤에는 비행기를 탈 수 없었으므로 12간씩 운전을 하고 돌아오기를 6번, 그러나 수술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결국 아기는 영원히 빛을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너무 많은 산소공급이 아기의 생명을 살릴 수는 있었으나 대신 망막을 손상시킨 것이다.
그때 그 심정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젖꼭지도 빨지 못하는 애기는 이유식 스푼으로 우유를 받아 삼키며 몸무게를 늘려 가야만 했다.
1온스를 삼키는데 1 시간... 난 24시간을 애기 우유와 약 먹이는데 전념했다. 영원히 걷지 못할 것 같던 아이는 만 여섯 살이 되면서 걸음마를 시작했고, 곧 기적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 아이는 26살. 아직도 음식을 씹을줄 몰라 반 유동식으로 먹는다. 내가 죽기 전에 음식을 씹어서 먹을수 있게 훈련하는게 나의 소원이다. 아기의 이름은 사라, 송사라.
많은 분들이 성경에 나오는 그 사라냐고 물어 본다. 24주 650 그램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아빠가 지어준 귀한 이름이다. 의사들도 가망이 희박하다고 말했기에, 아빠는 그저 제발 죽지말고 살아다오 라며 이름을 사라 라고 지었다. 아빠의 바람대로 아기는 잘 견뎌 주었고, 이제 아빠는 사랑하는 예쁜 딸의 이름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사랑이는 빛을 보지 못하는 대신 청력이 엄청나게 발달되었다. 사랑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다. 거의 이 세상 모든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특히 댄스음악과 댄스를 엄청 좋아한다. 아마도 정상적으로 태어났으면 지금쯤 춤꾼 내지는 음악 한다며 나랑 많은 마찰이 있었을 거 같다.
이제 다음 주면 사랑이가 일년 중 제일 좋아하는 캠프 에버그린 이다. 또 얼마나 땀을 흘리며 댄스를 할까?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 한 캠프. 사랑이가 캐인을 들고 더듬더듬 거리며 어거정 뒤뚱 이상하게 걸어도, 고개를 숙이고 양쪽 귀를 손가락으로 누르고 앉아 있어도, 음악 소리만 나면 양쪽 손 치켜들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괴성을 지르며 춤을 춰도,식사 시간에 가위를 들고 음식을 보기에 먹음직스럽지 못한 모양으로 만들어 먹여도 창피하지 않고 주눅들지도 않고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 부족한 아이들이 완전한 주인공으로, 모두가 공주이고 모두가 왕자님이 되어 꿈같은 2박3일을 즐긴다. 캠프를 주관해주시는 에버그린 프랜드 모든 분들께 마음을 담아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6년 8월에 엄마 송순옥
연우 Zoe
2016년 여름.
우리 사랑하는 조이와 함께한지 아직 육 년하고도 삼 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쩜 그리도 많은 일들이 있었던지. 느끼기로는 십 년도 훨씬 많이 지나버린 듯 합니다. 조이가 태어나던 그날의 기억은 너무도 선명해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조이 (Zoe) 는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이란 뜻을 가지고 있어요^^
아직 예정일이 일주일 남았던 그날 시할머님을 픽업하러 공항으로 출발하던 차 안에서 진통이 시작되었어요. 다행히 조이 아빠가 운전을 했기 때문에 참기로 하고 공항으로 향했으나 비행기는 연착한데다가 가방을 찾지 못해 시간을 소비하고 가까스로 병원으로 향했는데 너무나 심해져버린 진통을 참지못해 내지르는 신음에 병원에 어떻게 도착했는지, 응급실로 뛰어가 도움을 요청하는 남편에게 의료진들은 여기가 아니니 다른 문으로 가야한다며 어쩌구 저쩌구... 그사이 더이상 참을 수 없어 차에서 내리자마자 양수가 터져버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자 그제야 휠체어를 끌고서 나오는 의료진들... 그렇게 복도를 지나 마구 달려가고 있을때쯤 터져버린 신음에 갑자기 날라가는 우리 조이 공주. 워낙 힘이 좋아서였는지 태줄까지 끊기고 날라서 병원 복도랑 만나다니 얼마나 놀랐던지! 그때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밀검사를 하게 되었답니다. 다행히도 바닥에 떨어진 것으론 상처 하나 멍 하나 안생겼지만 심장에 이상이 있는걸 발견해서 바로 큰 병원으로 옮겨졌지요. 태어나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터라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채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지요. 다행히 심장에 큰이상은 아니라 간단한 수술만하면 된다 해서 100일도 안된 아기를 수술대에 올렸던 것인데 이 수술은 우리의 삶을 완전 바꾸어 놓았어요.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 수술시간 후엔 뇌졸증으로 인해 뇌에 너무도 많은 손상을 입게 된 것이었지요. 뇌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오른쪽 뇌는 보이지도 않고 왼쪽도 얼마나 많은 부분 부분들이 손상을 입었는지 그만 다리에 힘이 풀리더군요. 뇌 손상이 너무 심해 우리 딸은 보지도 듣지도 못할 것이며, 걷지도 못하고 반신불수가 된다는 의사의 진단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빵끗빵끗 예쁜 미소를 보내주던 우리 딸은 일 년 가까이는 의사가 말한데로 되는 듯 했지만 점점 독한 약들을 끊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해내기 시작했어요. 앉는 것도 서는 것도 걷는 것도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해내었고, 처음엔 보지 못하던 눈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잘보게 되었구요. 지금까지도 자기 의사소통은 힘들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열 줄도 훨씬 넘는 조이의 진단을 신뢰하지 않아요. 앞으로도 조이는 아주 아주 천천히 달팽이 같이 느리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지금처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거든요. 얼마전에 혼자 속으로 "아~ 진짜 힘들다" 했더니 우리 조이가 타이밍도 정확하게 “Don’t let me down” 이라며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 그래서 저는 또 힘을 냅니다.
사실 혼자였을 때 정말 눈물로 보내는 날들이 훨씬 많았지요. 그러나 카드파를 만나서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따뜻하게 함께하는 부모님들과 경험도 나누고 이젠 카드파 없인 못살 것 같아요. 아직 앞으로 더 넘어가야 할 산이 태산같지만 카드파와 함께라면 잘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우리 언제나 함께해요, 도와주고 도움받고 서로서로^^
—조이 엄마 황명희
아현 Michelle
아시아 인이라고는 우리 아들밖에 없는, 그리고 각 학년이 두 반밖에 없는 조그마한 학교에서 영어가 안되는 아들을 유난히 괴롭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귓속말로 아들을 괴롭히던 어느 날, 참다 못한 아들은 그 아이에게 저리 가라며 밀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갖게 된 미팅에서 선생님 왈, 아들이 그 아이를 날려버렸다고 하더군요. 허풍이 심하셨지만 정확히 ‘fly’ 라는 단어를 쓰시더라구요.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여 태권도를 가르쳐 보려고 했지만 한국인이 없는 동네에서 도장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여름 한글학교에서, 특별활동으로 태권도를 선택하면서 지금의 도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범님은 오랫동안 카드파 (KADPA) 를 후원해 오신 분이었습니다. 잘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 혹은 태권도를 하고 있는 사이에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사범님의 부인이신 사모님께서는 늘 그곳에 계셨습니다. 제가 아현이 문제로 고민할 때면 항상 KADPA 를 방문해 보라고 권하셨고, KADPA 에서 행사가 있으면 늘 제게 알려주시는 것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그 때마다 며칠 후면 어김없이 KADPA 에서 편지가 오고, 전 매니저셨던 이현정님께서는 전화를 주곤 하셨죠.
그 당시에 저희 딸 아현이가 어려서 참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었고, 5월에는 항상 아들 생일과 10월에 있는 태권도 행사가 겹쳐 KADPA 행사나 필드 트립에는 참여할 수 없었지만, 늘 챙겨주시는 두 분께 너무 감사했고 덕분에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으로 KADPA 와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KADPA 스쿨에 새싹반이 생기면서, 저희 가족은 이제 토요일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KADPA 스쿨로 한글교실 여행과 토요 여행을 갑니다. 이런 모습을 그 사모님께는 보여드릴 수가 없어 몹시 안타깝습니다. 2년간의 암 투병 끝에 작년에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지금 모습을 보면 많이 좋아하셨을텐데요... 돌아가신지 벌써 1주기가 되어 가네요. 사범님 편에 정성을 보내야겠습니다. 잘 계시죠? 보고 싶네요….
누구나 죽을 때까지 배울게 많다더니, 저 보다 나이는 어려도 협회의 회원 동생들로부터 배울 것이 참 많습니다! 여러가지 모양으로 감당하기 힘든 삶 속에서도 늘 밝은 모습을 보이는 새싹반 엄마들이 참 좋습니다. 이 예쁘고 밝은 엄마들에게 주신 우리들의 천사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친구라서 참 든든합니다.
—여아현 (Michelle) 엄마
이든이네 Eden
저희는 졸업과 동시에 유학을 결정하고, 미국에 함께 오기 위해 예정된 계획보다 결혼도 일찍하고 2006년 1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8월 30일 사랑하는 이든 (Eden) 이와의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든이의 15개월 무렵까지는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걷는 것이 15개월쯤에 걸어 좀 늦구나... 그리고 언어도 엄마. 물. 맘마 등 몇 단어만 했기에 그저 늦은 아이구나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어는 늘지 않고 블럭으로 일자 높이 쌓기, 공 일렬로 줄 세우기, TV에 두 시간 이상 푹 빠지기, 다른 사람과 인사 안하기 등 일반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불안한 마음은 현실이 되어 세 살에 이든이는 자폐 판정을 받았습니다. 보통 아이들과 다른 점을 그저 늦은거려니 하며 엄마의 무지로 소중한 시간을 흘려 보낸 것같아 아직도 이든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하지만 지난 일에 사로잡혀 있기엔 나아갈 시간이 너무 바쁘고 소중해서 더 큰 사랑으로 대신 채워주기로 맘 먹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왠지 가슴 한편이 아렸습니다. 더 많은 경험을 해야 하는 우리 이든이는 특별하기에 다른 아이들처럼 더 많은 체험과 경험을 할 수 없었던거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올해는 이든이를 위한 토요일을 만들고 싶습니다."하구요.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현빈이네를 알게 되어 KADPA 를 소개받고 2017년 9월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만남의 축복이지요!
이든이를 위해 주말에 갈 곳이 있다는게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KADPA 선배 가족분들의 수고와 사랑이 우리 가정에도 전해지는 것 같아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 가정 또한 받은 사랑을 흘러 보낼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특별히 귀한 만남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올해 저의 가장 큰 감사의 추수는 KADPA 가족들과의 만남인 것 같습니다.
성수 Sungsoo
2016년 8월 2일
왜 나이어야만 합니까?
25년 전 행복으로 내게 찾아온 첫 아이, 성수.
또래보다 늦게 결혼한 나는 힘들고 분주했던 지난 날들을 잊고 행복하며 평화로운 날들만 기대하면서 첫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임신 중에, 두 번의 꿈에서 보았던 아이의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꿈 속에서 아기는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하고 축 처진 건강해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난 착하고 나름 의롭게 남들을 위해 희생하며 이제까지 살아 왔는데 왜 내게 그런 일이? 생각조차 하기 싫은 마음에 꿈에서 본 것을 기억에서 지우고자 했는데…
선천적 장애 백치, 다운 신드롬 판정을 받고 하늘이 무너지고 앞이 안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억울함과 원망, 분노가 밀려오면서 하나님은 내게 무얼 원하시는지 알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닥쳐진 일이고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빛을 찾아, 다운 신드롬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며 성수의 행복을 찾아주고자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성수를 미리 꿈 속에서 나와 만나게 하시고 나에게 보내신다고 하셨는데, 난 거부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향한 마스터 플랜 속에 성수는 꼭 필요한 주인공인걸요.
어릴 적에 성수는 한국에서 열 살까지 살면서 면역이 약해 늘 병치례하며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고 고관절 골절로 전신 깁스를 두 번이나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는데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많이 건강해졌습니다.
하루는 성수가 아기였을 때 늘 성수를 위해 기도해주시던 성수 할머니께서 ‘하나님이 환상으로 성수의 성인이 된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키가 크고 아주 잘 생겼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일반적인 다운 신드롬에 대해 말씀 드렸는데,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 엄청나게 기도하신 모양입니다. 지금 성인이 된 성수를 보십시오~ 어머니가 말씀 하신대로에요!
무언가 늘 노트에 쓰기를 좋아하고 드럼과 기타 치기를 좋아하며 아침 저녁으로 늘 성경보며 묵상하는 우리 성수는 지금 사춘기를 지나는지 반항 중이네요. 뭐든지 하기 싫다 하고 전보다 좀 뚱뚱해지고 별로 행복해 보이질 않습니다. 또 어떻게 도와야할지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처럼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성수와 교통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보다 더 잘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며 이 시기가 잘 지나가길 기다립니다.
고통을 없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잘 견딜 수 있게 늘 곁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 하나님의 숨은 뜻을 믿음 가운데 기다리며 오늘도 성수가 기쁨으로 감사히 이 세상 살아가리라는 소망을 붙잡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묻고 싶습니다. 왜 꼭 저이어야만 합니까?
언젠가 하나님께서 답해 주실 것을 믿으며 온전히 순종하고자 합니다.
무진 Moo Jin
“나에게도 꿈이 있어요”
저는 ‘테디베어’와 ‘백만불짜리 미소’ 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박무진입니다. 저는 하루의 대부분을 엄마 곁에서 지냅니다. 우리 엄마는 늘 바쁩니다. 밥도 하고 김치도 담그고 여러 모임에 가져갈 음식도 만듭니다. 그러면 저는 가득찬 쓰레기도 갖다 버리고 새 쓰레기 봉투로 씌워 놓고 하느라 들락날락 나름 바쁘답니다. 엄마는 어슬렁거리는 제가 몹시 불만입니다. 대문도 활짝 열어놓고 신발도 거꾸로 신고 돌아다니고 때론 자동차 키도 들고 나가 자동차 본넷을 열고 창문 세척액도 채워 넣기라도 하면 엄마는 기겁을 하신답니다. 쇼핑 가서도 가끔 엄마가 옷을 고르느라 열중하실 때 혼자 화장실에 가기도 하는데 엄마는 저를 잃어버리신 줄 알고 주차장과 넓은 쇼핑몰을 이리저리 찾으러 다니신답니다. 매일 밥솥을 열어보고 남은 밥은 그릇에 담고 엄마가 쓰시는 계량컵으로 쌀을 밥솥에 넣어 여러번 씻으면서 버리는 쌀도 많지만 거기에 흑미도 한 주먹 넣어 밥을 안치고 취사를 누릅니다. 때로 물이 많아 죽밥도 되고 물이 적어 꼬두밥이 되기도 하지만 저는 엄마를 돕는 일이 너무너무 즐겁습니다.
아빠가 하는 일도 저는 할 수 있습니다. 아빠 서류 가방을 열어 서류도 들춰보고 어떤 서류는 제가 복사도 합니다. 거기에 MooJin 이라는 사인도 해서 게시판에 꽂아 놓습니다. 아빠가 페인트를 하신 다음날에는 저도 똑같이 재료를 들고 들어와 같은 곳에 한번 덧칠을 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복잡하고 난폭한 언어를 사용하고 싶어하지 않는 저는 말은 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이런 저의 맘을 모르는 엄마와 아빠는 미리 겁을 먹고 염려를 많이 한답니다.
저도 엄마 아빠처럼 ‘어른’이 되고 싶은 꿈이 있기에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답니다. 엄마 아빠를 따라 하다보면 제 마음이 뿌듯해지거든요. 엄마도 어릴 때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 할머니 몰래 화장도 해보고 뾰족 구두도 신고 마당을 왔다갔다 했다고 합니다. 학교 기록에는 제가 다섯 살 아이와 같은 지능을 가졌다고 하지만 항상 바쁜 엄마도 돕고 싶고 아빠처럼 의젓하게 앉아 컴퓨터도 하면서 엄마아빠를 기쁘게 해드리는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저도 우리 형같이 하고 싶은 일은 알아서 잘 하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엄마가 저로 인해 더 크게 웃으실 수 있는 날이, 우리 아빠가 흐뭇하게 저를 안아주실 수 있는 날이 꼭 올 것입니다
엄마 아빠! 힘드셔도 기다리며 지켜봐주세요. 지금은 잘하지 못해도 언젠가는 잘할 수 있을 거에요. 엄마 아빠가 저를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듯이 저도 사랑합니다!
—2016년, 무진의 마음으로 엄마 박경숙 씀.
브라이언 Brian
단 오 분도 가만히 있지 않는 브라이언을 생면부지의 형제, 자매님들이 봐주시고 그동안 힘들었던 부모님들은 푸-욱 쉬라는 고마운 Evergreen Camp 가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한다니 정말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긴세월이 많은 분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귀중한 시간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니 그 소중함에 숙연함이 든다.
우리 가족이 처음 캠프에 참석할 때 브라이언은 다섯 살!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말썽꾸러기여서 형제 자매님들의 몸무게를 줄이는데 늘 한몫 했었는데....
“Five minutes handsome” 인 브라이언은 어릴 때는 적어도 5분 동안은 미모로 견딜 수 있었는데 , 10년이 지난 지금은 점점 minute이 짧아져만 가고 귀여움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거뭇거뭇 여드름 투성이에, 묻는 즉시 "“Yes” 보다는 “No” 를 외치고 YouTube 음악을 즐겨듣는, 가끔은 춤 대신 Jumping 하는 반항하는 Baby Teenager 가 되어 있고. 동생때문에 처음에는 마지못해 캠프를 따라나섰던 꼬마숙녀 샌드라는 Service hour 를 받는 기쁨에 매끼니 때마다 Cafeteria 에서 열심히 일하고 캠프에서 주최하는 K-pop 못지않은 장기자랑 무대에서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Idol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다가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 자기의 인생을 책임지는 연습을 하고 있고. 잘생긴 외모를 인생의 자랑으로 여기던 브라이언 아빠도 가는 세월 앞에서는 기진맥진 맥을 못추고. 외모만 모자라는 나는 꾸준히 늘어가는 몸무게가 인간성과 IQ 와 비례한다고 굳게 믿고 오직 나만이 알고있는 몸무게를 자랑하고 있고.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우리 가족 모두가 이렇게 변했는데...
2박3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만나는 에버그린 캠프의 형제 자매님들은 강산이 두 번 아니 세 번이나 바뀌는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마치 어제 만난듯이 친근하고 반갑다. 이렇게 좋은 만남을 우리 귀여운 폭탄 브라이언 덕분에 해마다 누릴 수 있어서 항상 기쁘고 감사함을 느낀다.처음에는 브라이언을 우리만큼 잘봐주시지 못하는 프렌즈들한테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을 더 잘봐주시는 프렌즈들을 부러워도 했는데.... 해를 거듭하면서 그 서운했던 마음이 감사함으로, 부러웠던 마음이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귀중한 시간을 내서 가족들도 힘들어하는 우리 아이들을 변함없는 이해심과 배려심으로 중무장하고 부모들도 어찌 못하는 생면부지 우리 아이들을 정성으로 보살피고 더 도울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시는 따뜻한 마음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캠프를 시작할 때의 반가움과 헤어질 때의 아쉬움을 반복하면서 차곡차곡 쌓인 정으로 한 가족같이 느끼는 건 단지 우리들은 아닐 것이다.그런 분들 때문에 우리들은 너무 힘들어서 넘어지고 포기하고 싶다가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얻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우리가 오히려 선물을 드려야 할 형제님이 멋진 Hoodie 를 브라이언한테 선물로 보내주신 일, 파티에 가듯이 Dress up 하고 리무진을 탔던 일, Mickey Mouse 머리띠를 두른 샌드라와 브라이언... 캠프파이어에서 먹었던 Marshmallow 의 달콤함...
찍어주신 가족사진이 우리 거실벽에서 우리를 격려해주고, 보물 쪽지 찾기로 받은 냄비세트, 도마세트로 한 살림 장만했고, 격려로 받은 물비누는 거의 일 년 내내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고. 캠프를 시작하기 전 설렘과 만나서 반갑고 즐거워 하다보면 정신없이 2박3일이 지나서 헤어지는 서운함이 마음을 누르고 손꼽아 다음 해를 기다리고...
브라이언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Evergreen Camp가 다가오고 있어서 하루 하루가 기쁘다.
말 그대로 변치 않는 푸르름을 가진 캠프가 되길 바라고 모두들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서 새로운 추억 만들기를 기대한다. - 2016년 여름. 브라이언 엄마
조셉 Joseph
올해가 25주년이 되는 에버그린 캠프를 생각하니 많은 일들과 많은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23년 전 아홉 살이된 조셉을 데리고 처음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2박3일의 여행(?)을 떠나면서 많은 걱정과 불안이 함께 했음을 고백합니다. 그곳에서 만난 많은 선배 부모님들의 따뜻한 배려와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감동했던지요. 아이들이 봉사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질 때 부모님들만의 미팅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동안 서로의 힘들었던 시간들을 나누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같이 나누는 이야기에 같이 울어주고 힘을 주었던 선배 부모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땐 지금보다 젊었고 힘이 있어 무엇이든 함께하고 서로 도와주려는 마음들이 컸었지요. 만날 때마다 울고 웃고 그런 시간이었기에 또 다른 하나의 가족을 만난 듯 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코 끝이 찡하며 눈물이 납니다.
에버그린 캠프가 지금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은 봉사자 형들과 누나들의 힘이 제일 큽니다. 대학 시절의 풋풋한 모습으로 다른 즐거운 일이 많이 있을 시간인데 우리 아이들을 위해 그런 즐거움을 버리고 매년 수고해 주시는 형, 누나들을 보며 감동에 감동이 더해졌지요. 변함 없는 형, 누나들의 모습을 보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흘러 형, 누나들이 결혼을 하게 되고 새로운 가족이 탄생했음에도 변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매번 수고해 주심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살아있는 믿음의 증인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축복이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 (신 33:12)” —2016년 여름, 조셉 엄마
은성이 Unsung
파 . 충 . 류 .
21년 전 분만실에서 의사가 내게 안겨준 은성이를 보고 첫번째로 머리를 스치는 단어…..
근육의 힘이 약해 벌려진 입사이로 뾰죽히 삐져나온 흉측한 혀와 비정상적으로 위로 치켜올라간 눈꼬리… 이 파충류같이 생긴 아이가 정말 내 속에서 나온 아이인가?
젖을 잘 빨지도 못하고 폐기능이 마비되어 breathing machine 을 통해 숨을 쉬고 있던 은성이를 보며 “그냥 이대로 데려 가시지” 라는 생각을 하고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라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내가 컨트롤 하기 전에 저절로 난 생각이었다.
그 당시까지 교회만 다녔지 거듭나지 못했던 나로서는 은성이를 키우며 했던,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불쑥 불쑥 튀어 나오는 그런 나쁜 생각들을 통해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고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를 짓는다”라는 말을 몸으로 알게 되었고, 또한 은성이를 붙들고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생명의 근원이신 절대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과정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수없이 들은 성경말씀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은성이가 결국 정상아이가 될것이라는 말씀이 아니었고, 이 아이를 우리 가정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미였음을 깨닫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은성이를 통해 나같은 죄인이 죄인됨을 깨닫고 인정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일, 그것이 은성이를 우리 가정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 중에 하나였다.
지난 5월 은성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아트 쇼에 가보니 은성이가 그린 작품이 걸려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은성이가 분명히 십자가를 그린 것 같은데 은성이 미술 쌤은 “Orange, black, pink, blue and yellow squares” 라고 제목을 붙혔다. 미술 쌤이 종교적인 단어를 공립학교 아트 쇼에 써놓을 수가 없어서 그랬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아무튼 은성이의 그림을 네모 몇 개 모아놓은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은성이는 며칠 후 집에서 그린 그림에서 자기가 그린 그림이 십자가였음을 말없이 증명해 주었다. 그 “네모 몇개” 위에 하트를 그림으로써……할렐루야!
……하긴, 십자가를 네모 몇 개로 이해한 사람이나 하나님의 선물을 파충류로밖에 보지 못했던 사람이나..ㅎㅎ
21년 전, 근시안을 가졌던 내게 ‘파충류’로 보였던 이 볼품없던 아이가 나에게 세상에서 줄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해주고, 사고방식의 변화, 영생까지 얻게 해줄지 어찌 알았으랴!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령상으로는 ‘성인’ 의 스테이지에 막 들어선 은성이를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실 또 다른 계획과 뜻을 믿는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우리 삶 뒤에는 하늘의 직공이 계셔서
그 놀라운 뜻을 이루어 가시도다.
우리의 삶을 그 지혜로운 손에 온전히 맡기며
완전하신 솜씨를 의지하노라.
그 분의 계획이 신비에 싸여
우리의 근시안에는 희미해 보여도
우리는 그것을 알고자 아니하며
삶의 한올 한올을 그분께 맡기리라
-C. Murray- - 2016년 여름에. 은성 엄마
**지난 25년간 에버그린 캠프를 위해 충성되이 섬기신 김신동 집사님과 지은 씨, 은성이 buddy브라이언 형제님, 그리고 모든 에버그린 프렌즈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분주한 삶 가운데 우리 은성이의 의미를 되새길 기회를 주셔서 또한 감사합니다.**
현빈이네 John
저희 가족은 여섯 살 서현빈 (John), 네 살 서예빈 (Ruth), 아빠, 엄마 이렇게 네식구가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현빈이가 병원에서 2 세 검진을 받는데, 의사선생님께서 현빈이가 말이 느리다고 Infants & Toddler 라는 기관을 소개시켜 주셨어요. 저희는 현빈이가 말이 다소 느리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미국 삶이 정신없고 바쁘다는 핑계로 검사를 차일피일 미루며 지냈죠.
그러다가 현빈이가 세 살 반즈음에 결국 의사선생님께서 현빈이가 Autism 같다며, 진단을 어서 받아 보라고 진지하게 권하셨어요. 저희는 ‘Autism’ 이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고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가슴이 그냥 먹먹하더니 잠시 후에는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한 두려움과 앞날의 걱정들이 엄습해왔어요. 결국 Child Find 에서도 우리 아이에게 자폐라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현빈이는 우리 부부가 정상적으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의사선생님의 진단으로 아이 갖기를 포기한 후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 였습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오히려 현빈이를 통해서 삐그덕거리며 무너져가던 저희 가정을 보수하시기 시작하신거죠. 해맑은 현빈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저희 부부가 정상적인 몸과 정신을 소유했지만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는 심각한 Disability (장애) 를 가진 장본인들임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많은 햇수가 지나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KADPA 의 문을 올 3월 (2017년)에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많은 회원님들께서 정말로 따뜻한 격려와 용기, 사랑 그리고 도움을 끊임없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희 현빈이는요 감사하게도 학교 다니는 것을 참 좋아해요. 아이가 활동적이라 운동장에서 노는 것도 좋아하고, Play-Doh 와 레고 블럭 놀이를 좋아한답니다. 또한 항상 스마일을 발사하는 이렇게도 사랑스럽고 순한 아이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그런데 이런 감사 중에도 가끔 염려가 밀려올 때가 있답니다. 현빈이가 지금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앞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가서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지는 않을까....? 먼훗날 저희 부부가 이 세상에 없는 날이 온다면 이 아이를 누가 지켜 줄까...? 하는 생각들로 말입니다. 그런 저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어요.
“Don’t worry about anything, instead pray about everything. Tell God what you need and thank him for all he has done (빌립보서 4:6)”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현빈이에 대한 미래뿐만 아니라, 이 세상 근심과 걱정들이 잠잠해지고, 놀랍게도 더욱 감사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답니다.